8년간 신장 이식·암 이겨내고 ‘세번째 축복’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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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9-21 09:54 조회1,415회 댓글0건본문
20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한 아파트. 김은미(34)씨가 태어난 지 한 달 된 딸 별이를 토닥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건강이라 항상 불안했어. 네가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규민(5)·강민(3) 형제를 둔 김씨는 지난달 18일 막내딸을 품에 안았다. 신장 이식과 암 수술, 인공수정 등 인생의 여러 고비를 모두 이겨내고 삼남매 다둥이 엄마가 됐다. 김씨는 “아이들과 지내는 평범한 하루가 이토록 큰 행복을 줄 줄 아이 갖기 전에는 정말 몰랐다”며 웃었다. 김씨는 2015년 3월 결혼하고 7개월 만에 신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당장 신장을 이식받지 않으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그해 12월 남편 김진영(37)씨에게 신장을 이식받아 고비를 넘겼다. 김씨 부부는 아이를 갖기로 했지만 주변에선 다들 말렸다. 신장 이식 환자는 이식받은 신장에 대해 거부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약이 임신을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신장 이식에 이어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았고, 유산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8년에 걸쳐 세 아이를 잇달아 낳았다. 신장 이식 환자가 세 아기를 출산하는 일은 거의 유례가 없다고 한다. 김씨가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세 아이를 낳은 서울성모병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은 한국뿐이다. 김씨는 “주변에 지금도 ‘시집 안 가겠다’ ‘결혼은 해도 아이는 안 낳는다’는 또래가 많다”며 “아이를 낳아 키우기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행복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달 18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셋째 별이를 낳았다. 체중 2.54㎏. 예정일보다 3주 빠른 출산이었다. 태명은 ‘쫑쫑이’. 그는 “내가 더 건강했다면 다섯째까지도 낳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초·중학교 때는 축구 선수로 활동했고, 고교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워 공인 5단이다. 건강에는 자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2014년 겨울 몸에 이상을 느꼈다. 피부가 노랗게 변했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스물한 살에 만난 남편과 이듬해 결혼했지만, 병세는 더 심해졌다. 여러 병원을 거쳐 찾아간 종합병원에서는 “신장이 망가져 이식 아니면 살길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김씨는 예전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었지만,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자 임신을 준비했다. 그는 쌍둥이 언니, 남동생과 함께 자라면서 행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하면 꼭 아이 셋을 낳아 기르겠다는 결심을 다졌다고 한다. 신장 이식 환자가 임신하기는 쉽지 않았다. 복용하는 약에 들어 있는 스테로이드 성분으로 생리 불순이 생겼다. 인공수정을 거쳐 2018년 첫 아이 규민이가 찾아왔다. 둘째 강민이는 한 차례 유산을 겪은 뒤 2020년 얻었다. 그런데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다행히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은 아니었다. 주변에선 말렸지만 셋째를 가지려 했다. 자궁암도 ‘아이가 행복’이라는 김씨의 뜻을 꺾지 못했다. 이후 인공수정으로 셋째 임신에 성공했다. 김씨는 “첫째 규민이를 낳을 때는 ‘나도 이제 부모가 됐다’는 기쁨을 느꼈고, 둘째 강민이 때는 ‘아픈 엄마 옆에서 첫째가 외롭지 않게 기댈 수 있는 형제, 영원한 단짝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는 아들이고, 셋째 별이는 딸이다. 별이를 얻은 뒤에는 “목욕탕에 같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했다.
그는 힘들고 피곤한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모여 행복을 이루는 것 같다고 했다. “막내 재우려고 잠 못 자고 있으면 첫째가 옆에 와서 ‘엄마 안 힘들어?’ 물어보고, 냉장고에서 분유를 꺼내 와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어요.” 그는 “임신을 고민하는 부부가 있다면 일단 낳아보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씨와 함께 체육관을 운영하던 남편도 짬 나는 대로 육아에 힘을 보탠다고 했다. 빨래와 설거지, 두 아들 씻기는 일은 남편 몫이라고 했다. 남편이 같이 양육하지 않았으면 큰 수술을 두 번 받은 건강 상태로 세 아이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했다. 퇴근한 남편이 TV를 켜고 소파에 드러누울 시간은 없다. 다둥이를 끌어안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김씨는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경제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안고 있는 남편을 볼 때 ‘우리가 진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서로 핏줄을 보듬고 보살피는 안정감이 크다”고 또래 여성들에게 말했다. 김씨는 “저출산이라는 문제가 단번에 뚝딱 해결되긴 어렵겠지만, 아이들과 부모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조금씩이라도 변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조선일보발췌)
김씨는 지난달 18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셋째 별이를 낳았다. 체중 2.54㎏. 예정일보다 3주 빠른 출산이었다. 태명은 ‘쫑쫑이’. 그는 “내가 더 건강했다면 다섯째까지도 낳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초·중학교 때는 축구 선수로 활동했고, 고교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워 공인 5단이다. 건강에는 자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2014년 겨울 몸에 이상을 느꼈다. 피부가 노랗게 변했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스물한 살에 만난 남편과 이듬해 결혼했지만, 병세는 더 심해졌다. 여러 병원을 거쳐 찾아간 종합병원에서는 “신장이 망가져 이식 아니면 살길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김씨는 예전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었지만, 건강이 조금씩 회복되자 임신을 준비했다. 그는 쌍둥이 언니, 남동생과 함께 자라면서 행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하면 꼭 아이 셋을 낳아 기르겠다는 결심을 다졌다고 한다. 신장 이식 환자가 임신하기는 쉽지 않았다. 복용하는 약에 들어 있는 스테로이드 성분으로 생리 불순이 생겼다. 인공수정을 거쳐 2018년 첫 아이 규민이가 찾아왔다. 둘째 강민이는 한 차례 유산을 겪은 뒤 2020년 얻었다. 그런데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다행히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은 아니었다. 주변에선 말렸지만 셋째를 가지려 했다. 자궁암도 ‘아이가 행복’이라는 김씨의 뜻을 꺾지 못했다. 이후 인공수정으로 셋째 임신에 성공했다. 김씨는 “첫째 규민이를 낳을 때는 ‘나도 이제 부모가 됐다’는 기쁨을 느꼈고, 둘째 강민이 때는 ‘아픈 엄마 옆에서 첫째가 외롭지 않게 기댈 수 있는 형제, 영원한 단짝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는 아들이고, 셋째 별이는 딸이다. 별이를 얻은 뒤에는 “목욕탕에 같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했다.
그는 힘들고 피곤한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모여 행복을 이루는 것 같다고 했다. “막내 재우려고 잠 못 자고 있으면 첫째가 옆에 와서 ‘엄마 안 힘들어?’ 물어보고, 냉장고에서 분유를 꺼내 와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어요.” 그는 “임신을 고민하는 부부가 있다면 일단 낳아보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씨와 함께 체육관을 운영하던 남편도 짬 나는 대로 육아에 힘을 보탠다고 했다. 빨래와 설거지, 두 아들 씻기는 일은 남편 몫이라고 했다. 남편이 같이 양육하지 않았으면 큰 수술을 두 번 받은 건강 상태로 세 아이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했다. 퇴근한 남편이 TV를 켜고 소파에 드러누울 시간은 없다. 다둥이를 끌어안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김씨는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경제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안고 있는 남편을 볼 때 ‘우리가 진짜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서로 핏줄을 보듬고 보살피는 안정감이 크다”고 또래 여성들에게 말했다. 김씨는 “저출산이라는 문제가 단번에 뚝딱 해결되긴 어렵겠지만, 아이들과 부모들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조금씩이라도 변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조선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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